드라마 <오월의 청춘> 촬영 끝나고 어떻게 지냈어요?
촬영이 지난주에 끝났어요. 보통 드라마는 16부작 정도 하는데 <오월의 청춘>은 12부작이라 아쉬움이 커요.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는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쫑파티도 못했어요. 드라마 촬영하면서 이렇게 회식 한 번 없이 끝난 건 처음이에요. 그래서인지 여느 때보다 더 여유롭게 보냈어요.
<오월의 청춘>에서 악역 황기남은 매회 소름 유발자로 활약해요. 황기남과 본인을 비교하면 어때요?
저는 그렇게 못된 사람이 아니에요. 화가 나도 빨리 풀리는 편이고, 뒤에서 주도면밀하게 조종할 정도로 치밀하지도 않고요. 닮은 점이 있다면, 밥 잘 먹는 것 정도?(웃음)
‘황기남, 진짜 나쁜 놈이네’ 싶었던 순간이 몇 번 있었을 텐데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떼어놓기 위해 사고를 내고 집에 가둔다는 설정. 그렇게까지 막아야 하나? 심지어 아들이 보는 앞에서 그 여자를 죽이라고 시키잖아요. 나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해요.
그래서 벌을 받죠. 마지막에 가족들에게 외면당하고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채 쓸쓸한 최후를 맞이해요. 결말에 만족하나요?
그 뒤로 황기남이 어떻게 됐는지 안 보여주고 여지를 남겨둬서 좋아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 곁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 역사적으로도 가해자들이 벌을 받아서 죗값을 치르기도 하지만 여전히 잘 살기도 하는 것처럼요.
카메라가 꺼지면 악역에서 보통의 오만석으로 돌아오나요? 일과 일상을 분리하는 편인지 궁금해요.
예전에는 살인자 역할을 맡으면 촬영이 끝나고도 어둡고 날카롭고 예민했어요. <오월의 청춘> 때는 슛 들어가기 전까지 농담을 주고받다가 촬영할 때만 집중해서 몰입했어요. 그게 정신 건강에 더 좋은 것 같고.(웃음)
배우 오만석도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나요?
그럼요. 저는 돈 받고 무대에 오른 것부터 데뷔로 치거든요. 그게 1999년이었어요. 벌써 22년 차가 됐네요. 카메라 앞에 선 건 2003년부터니까 햇수로 18년 됐고요. 늘 긴장돼요. ‘연습한 만큼 결과물이 나올까?’ 연습한 게 100인데 결과물도 100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나이 들어감에 따라 들어오는 시나리오의 결도 많이 달라지죠?
이번 <오월의 청춘>이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어요. 에서는 고등학생 아이를 둔 아버지였는데 이번에는 아들이 대학교 졸업을 앞둔 인물이었죠. 다시 또 내려가고 싶어요.
다음에는 어느 정도 나이대였으면 좋겠어요?
사실 지금도 만족해요. 나이를 먹으면서 비슷한 나이대의 역할을 하는 게 당연하죠. 근데 직업적으로 폭이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배우라는 직업을 하면서 가장 달라진 게 있다면?
학생 이후에는 계속 배우로 살았어요. 20대 중반부터 배우를 했으니, 사실 다른 직업군을 경험해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죠.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았고요. 평범한 삶은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늘 감사하려고 하고. 순응하며 살고 있어요.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뭐예요?
신체 노화에 대한 걱정. 몸이 점점 내 의지와 다르게 말을 듣지 않거나 신체적인 변화가 조금씩 느껴질 때의 공허함.(웃음)
지금 오만석에게 가장 무서운 건 노화군요.
제일 무서운 건 다음 작품이고요.(웃음) 저는 다음 작품이 늘 슬럼프처럼 다가와요. 돌아보면 ‘걱정한 것보다 잘 넘어가서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고. 지금도 곧 들어갈 작품이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죠.
‘나이를 먹을수록 겁이 많아진다’는 말이 맞네요. 흔히 남자 인생은 40대부터라고 하잖아요. 공감해요?
저는 30대보다 40대가 더 좋아요. 20대 때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열심히 해서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죠. 40대에는 그동안 어떻게 의미 있게 시간을 보냈는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어요. 그 순간을 즐길 줄도 알고요.
40대는 흔히 불혹,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 하잖아요. 오만석은 어떤가요? 흔들림이 없는 삶을 살고 있나요?
그런 의미의 불혹이라면 더 나이를 먹어야 할 거 같아요. 지금도 맛있는 게 앞에 있으면 먹고 싶고 축구를 하면 발리슛을 넣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몸이 안 따라줘서 속상할 뿐이죠.(웃음) 50대 이상이 되면 ‘이런 건 위험하니까 하지 말아야지’ 할 텐데 아직은 철이 없나 봐요.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될 수 없는 건 누구나 그런가 봐요.
사회적인 통념으로 따지자면 어른이겠죠. 저 스스로 어른이 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봐요. 하지만 이제 어른의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어린 친구들이 볼 때 ‘저 사람처럼 살아야겠다’는 표본을 제시해 주는 일, 옳고 그른 걸 떠나서 세상에 이러한 것들이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사람. 물론 선택은 그들의 몫이겠죠.
뜻하지 않게 심오한 대화를 나누고 있네요. 오만석은 의외로 어떤 사람인가요?
아재 개그 많이 하는 건 의외가 아니겠죠?(웃음) 의외로 눈물이 많아요. 저는 <오월의 청춘>을 보면서도 많이 울었어요. 특히 혼자 드라마, 영화, 괜찮은 공익광고를 볼 때 그렇게 눈물이 나요.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 번만 우는 거라고 배웠는데.
그럼 저는 100번도 더 태어나야 할걸요.(웃음) 눈물이 난다는 건 내 몸의 막힌 게 뚫리면서 해소되는 거라고 봐요. 오히려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게 더 위험할지도 몰라요. 사람이 머리를 세게 부딪쳤을 때 피를 흘려야 더 안전하다고 하는 것처럼.
오만석의 인생은 독립영화, 상업영화, 블록버스터, 뮤지컬, 연극 중에서 어떤 장르일까요?
중극장 연극. 중극장에서는 상업극도 하고 실험극도 하고 때로는 막을 쳐놓고 독립영화 상영회도 열어요. 극이 끝나고는 사람들과 술판을 벌이기도 하고요.(웃음) 셰익스피어 연극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많은 분들이 보러 오는 그런 작품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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