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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랙의 시대 : 코카인에 물들다
불법은 자극적이고, 자극적인 이슈는 큰 관심을 모은다. 마약을 소재로 한 영화는 수도 없이 봐왔을 테지만 <크랙의 시대 : 코카인에 물들다>는 좀 다르다. 다큐멘터리의 주 소재인 마약은 사회 이면을 보여주는 수단일 뿐이다. 제목에 붙은 수식어 ‘크랙’처럼 이 작품은 계층 상관없이 약물 중독자로 넘쳐났던 1980년대 미국 이야기를 다룬다. 백인 사회에서 시작된 코카인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체 형태의 저렴한 크랙으로 바뀌었고 흑인 사회의 생계 수단이 됐다. 이 값싼 중독은 미국 전역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총을 쥐게 했다. 전염병 수준으로 사람이 죽어나갔다. 다큐멘터리는 크랙 유입의 원인을 정부의 방관으로 지목한다. 언론 또한 가혹하게 묘사한다. 만악의 근원으로 흑인을 다루고, 흑인에게 처벌도 가중된다. 편파적 처벌은 당시 미국 내 인종차별이 만연했음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1980년을 ‘크랙의 시대’가 아닌 ‘백인의 시대’로 복기한다.
감독 스탠리 넬슨 어디서 봐 넷플릭스 주의 1시간 반 남짓의 러닝타임은 한 시대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하다. 객관적 판단을 위한 배경 지식은 갖추고 볼 것. -
로레나
1993년, 미국 버지니아주에 살던 로레나라는 여성이 20cm 부엌칼로 남편의 성기를 절단했다. 이토록 충격적인 사건을 약 20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들춰낸 데는 이유가 있다. 로레나는 남편에게 지속적인 학대와 성폭행을 당해왔지만 언론은 그런 문제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이 엽기적이고 기괴한 사건을 설명하는 모든 문장은 선정적인 단어로 점철됐다.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인 일이 더 큰 불행으로 부풀었다. 전국에서 로레나를 단지 ‘성기 절단녀’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로레나>는 ‘로레나 보빗’의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는다. 가십거리에 불과했던 로레나 사건의 숨겨진 원인을 찾으려 애쓰고, 알맹이를 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선정성만 부추기는 언론을 비판한다. 피해자 코스프레로 인기 스타가 된 남편 존 웨인의 뻔뻔한 태도도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젠 온 세상이 그가 저지른 범죄도 알게 되었으니 로레나를 그저 ‘성기 절단녀’로 칭할 수 없게 되었다.
감독 조던 필 어디서 봐 아마존 프라임 주의 존 웨인의 당당한 태도에 속지 말 것. 성기 절단 사건 이후에도 그는 여성 폭행 혐의로 교도소를 밥 먹듯 들락날락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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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스토커 :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다
<나이트 스토커 :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다>야말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영화에서도 이토록 잔인한 설정은 가혹하다. 화려한 로스앤젤레스의 낮을 타칭 나이트 스토커 ‘리처드 라미레즈’가 어둠으로 물들였다. 예측 가능한 범죄가 어디 있겠냐만, 그의 살인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유사성 없는 것이 유사성이라고 말했을 정도. 남녀노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살해한 희대의 사이코패스. 리처드 라미레즈 뒤를 밟던 두 형사가 당시 사건의 끔찍함을 눈앞에 가져다놓는다. 범죄를 재구성한 연출은 자극적이고 사실적이다. 환멸적인 살인 행각만으로도 탄식이 절로 나오는데 공권력의 무능함까지 더해졌다. 나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똘똘 뭉친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다’라는 부제처럼 내내 살인범만 추적하다 끝날 때쯤 살인범의 사연 팔이가 시작된다. 리처드 라미레즈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지는 우리의 숙제다. 그는 사람일까 악마일까.
감독 틸러 러셀 어디서 봐 넷플릭스 주의 사건의 재현이 탄식 나올 정도로 잔혹하다. 체할 수 있으니 밥 먹을 땐 보지 말 것. -
테드 번디 : 살인자의 유혹
살인자에게도 스타성이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테드 번디가 빠질 수 없다. 살인자를 주인공으로 한 숱한 영화와 드라마들은 언제나 화제가 됐다. 테드 번디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는 너무 많고, 심지어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니 스타성 하나는 끝내주는 살인자다. 무려 30명 이상의 여성을 살해하고도 호감형 외모, 화려한 언변으로 그는 스타 살인범이 되었다. 이러니 피해자들은 모두 외면당했다. <테드 번디 : 살인자의 유혹>은 초점을 바꿨다. 그를 스타로 보지 않고 단지 살인마로 치부한다. 테드 번디가 왜 살인을 시작하게 됐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는 관심도 없다. 오직 살아남은 사람들,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테드 번디의 애인이었던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생존자와 피해자 가족들이 어렵게 입을 연다. 사형 집행 이후에도 계속된 2차 피해, 그리고 이후에 남겨진 고통까지 조명한다. 이 작품의 끝에 테드 번디는 없다. 사건을 사건 그 자체로 직시하고, 가해자의 거대한 서사보다 피해자의 작은 목소리에 집중할 뿐이다.
감독 트리시 우드 어디서 봐 아마존 프라임 주의 사람을 다 안다고 믿지 말자.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속지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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